CCHARAVERSE STUDIO
짱과 전학생

09화 · 전체 20화

놓을 수 없는 자리

글 · 힐링아무

집에 돌아온 재현은 거실에서 낯선 얼굴들을 마주쳤다.

아버지의 손님들이었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재현은 익숙하게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아버지가 그를 붙잡았다.

"재현아, 잠깐 앉아봐."

거실 테이블에는 서류 몇 장이 펼쳐져 있었다. 재현은 뭔지 정확히 몰랐지만, 낯익은 분위기였다 — 아버지가 사업 얘기를 할 때 나오는 특유의 공기.

"요새 학교는 잘 다니고?" 아버지가 물었다.

"그냥 그렇죠."

"네 서열, 흔들리는 일 없지?"

재현은 순간 멈칫했다. 그 질문이 단순한 안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왜요."

아버지는 손님들을 힐끗 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동현이 아버지랑 요새 사업 쪽으로 얽힌 게 좀 있어서. 괜히 애들 싸움이 커지면 곤란해."

재현은 그 말의 무게를 곧바로 이해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서열 다툼이, 재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 사업과도 직결된 일이라는 것. 재현이 밀리면, 그건 단순히 재현 하나의 체면 문제가 아니었다.

"밀릴 일 없어요."

"그래야지." 아버지가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 자리 지켜야, 이쪽도 얘기가 편해."

방으로 들어온 재현은 문을 닫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네가 그 자리 지켜야, 이쪽도 얘기가 편해.'

새삼스러운 말은 아니었다. 재현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 자신의 위치가 순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의 이름값과 얽혀 있고, 그 이름값이 다시 아버지의 사업과 얽혀 있는, 벗어날 수 없는 구조.

—

다음 날, 재현은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은호는 그런 변화를 눈치챘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대신 옆에 조용히 있어줬다.

점심시간, 옥상 계단 — 어느새 둘만의 자리처럼 굳어진 곳이었다. 재현은 난간에 기대 먼 하늘을 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너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어?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들."

은호가 재현을 잠깐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당연히 있지. 다들 그렇지 않아?"

"난 그게 내 인생 전부인 것 같아서." 재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 자리, 원해서 지키는 거 아니야. 그냥… 놓으면 안 되는 거니까 지키는 거지."

은호는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표정에 동정이나 놀라움 대신, 뭔가 이해한다는 듯한 담담함이 있었다.

"그거 되게 힘들겠다." 은호가 나직이 말했다. "누구를 위해서 사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버텨야 하는 거."

재현은 그 말에 순간 목이 메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이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아니, 꺼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은호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너한테는 왜 이런 얘기가 술술 나오는지 모르겠다."

은호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에 아주 잠깐, 슬픔 같은 게 스쳤다.

"그러게. 나도 좀 이상하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각자 다른 무게를 짊어진 채로, 같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 *(다음 화 예고: 은호를 알아보는 낯선 시선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09화 끝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