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부터 은호는 확실히 달라졌다.
여전히 웃었고, 여전히 나른했지만, 재현과의 거리가 미묘하게 벌어져 있었다. 눈에 띄게 피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딱 반걸음쯤, 예전보다 멀어진 느낌이었다.
재현은 그 변화를 곧바로 알아챘다.
"요새 왜 그래." 쉬는 시간, 재현이 은호 옆에 다가가 물었다.
"뭐가." 은호가 시선을 창밖에 둔 채 대답했다.
"나 피하잖아."
"안 피하는데." 여전히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자체가 이미 답이었다.
재현은 그 미묘한 벽이 답답했다. 지금까지는 자기 쪽에서 감정을 부정하느라 바빴는데, 막상 인정하고 나니 이번엔 은호 쪽이 물러서는 상황이 낯설고 초조했다.
—
며칠 뒤, 재현은 결심을 하고 야자 끝난 밤 은호를 붙잡았다.
"잠깐 얘기 좀 하자."
은호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텅 빈 운동장 스탠드에 나란히 앉았다. 밤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요즘 왜 자꾸 거리 두는지 물어봐도 돼?"
은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모른다는 게 무슨 소리야."
"그냥." 은호가 무릎을 감싸 안으며 시선을 내렸다. "너한테 자꾸 마음 쓰는 게, 내가 원하는 건지 아닌지 헷갈려서."
재현은 그 말에 순간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완곡했지만, 은호 나름의 솔직한 고백에 가까웠다.
"그게 왜 헷갈릴 일이야." 재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듯했지만, 결국 삼켰다.
"…복잡한 사정이 있어. 지금은 말 못 해."
"사정이라니."
"그냥 믿어줘. 나 너 피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은호가 재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지금 더 가까워지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
재현은 그 말의 진의를 온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은호의 눈빛에서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 뭔가 무거운 걸 억누르고 있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기다릴게." 재현이 결국 그렇게 말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순순한 말이었다. "말할 수 있을 때 말해."
은호는 그 말에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순순히 나올 줄은 몰랐네."
"나도 몰랐어, 내가 이럴 줄은." 재현이 씁쓸하게 웃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하지 않은, 오히려 서로의 거리를 가늠하는 듯한 침묵이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재현은 오늘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복잡한 사정.'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 은호가 자신을 밀어내는 게 무관심 때문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재현은 그 사실 하나로도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동시에, 궁금증은 더 커졌다.
'대체 무슨 사정이길래.'
그 답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걸, 재현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 *(다음 화 예고: 재현의 서클, 아버지 라인의 무게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