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동현 라인의 움직임이 결국 선을 넘었다.
방과 후, 재현이 볼일이 있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은호가 우연히 그 골목을 지나가다가, 동현 라인 애들 몇과 마주쳤다.
"어, 너 그 전학생이잖아." 동현 라인 중 한 명이 은호를 알아보고 실실 웃었다. "재현이랑 요새 붙어 다닌다며."
은호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 했지만, 상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야, 잠깐 얘기 좀 하자." 다른 하나가 은호의 팔을 붙잡았다. "재현이한테 전할 말이 있어서."
험악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은호는 겉으로는 여전히 태연했지만, 숫자 차이가 명백한 상황이었다.
그때, 재현이 우연히 그 골목 어귀를 지나다 상황을 목격했다.
"뭐 하는 거야."
재현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리자, 동현 라인 애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재현은 성큼성큼 다가가 은호의 팔을 잡은 손을 거칠게 쳐냈다.
"손 떼."
"어이, 재현아." 동현 라인 리더 격인 애가 손을 들며 웃었다. "우린 그냥 인사한 거야. 네 애인이야, 뭐야?"
"그딴 소리 할 시간 있으면 꺼져."
재현의 눈빛이 평소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그 자리 특유의 공기 — 잘못 건드리면 정말 위험해질 것 같은 기운이 흘렀다. 동현 라인 애들은 잠깐 눈치를 보다가, 결국 투덜대며 물러났다.
"다음에 보자, 도재현."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남기고 그들이 사라졌다.
—
골목에 둘만 남자, 재현은 그제야 숨을 골랐다. 은호를 돌아봤다.
"괜찮아?"
"어." 은호가 팔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었는데. 너 안 와도 됐어."
"안 오긴 뭘 안 와." 재현이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쟤들이 어떤 애들인지 몰라서 그래?"
"몰라." 은호가 순순히 인정했다. "근데 알았어도 딱히 무섭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 말이 허세처럼 들리지 않아서, 재현은 오히려 더 신경이 쓰였다.
"…그런 식으로 굴다가 진짜 다친다고."
"걱정해주는 거야?"
재현은 그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부정하기도, 인정하기도 애매한 감정이었다.
침묵이 흐르는 사이, 은호가 문득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계산 없는, 안도 섞인, 아무 방어도 없는 웃음. 위기를 넘긴 뒤에야 나오는 그런 웃음이었다. 재현은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똑같았다.
정확히, 이든이 지었던 그 웃음과.
재현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은호는 재현의 그런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듯, 다시 평소의 나른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왜 그렇게 봐?"
"…아니." 재현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말도 안 돼.'
재현은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얼굴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고, 심지어 성격까지 다른 애였다. 그런데 딱 그 순간, 그 웃음 하나에서 재현은 분명히 이든을 봤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재현은 몇 번이고 그 웃음을 다시 떠올렸다.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이상하게 조여왔다. 죄책감인지, 그리움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인지 스스로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나 진짜 왜 이러지.'
재현은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날 밤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 *(다음 화 예고: 재현, 부정할 수 없는 감정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