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짱과 전학생

02화 · 전체 20화

길들이기 실패

글 · 힐링아무

다음 날부터 재현은 은호를 조금 더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딱히 그러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그냥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뭐가 문제인지 파악만 하면 돼.'

재현은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낯선 애 하나가 룰을 모르고 설치는 게 거슬려서, 그뿐이라고.

—

첫 번째 시도 — 무게로 누르기

점심시간, 재현이 매점 가는 길목에 은호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재현의 라인 몇이 뒤를 따르고 있었고, 지나가는 애들이 알아서 길을 텄다. 은호만 빼고.

"비켜야지." 재현이 짧게 말했다.

보통 이 정도 톤이면 다들 알아서 물러났다. 은호는 대신 재현을 한 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반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딱 지나갈 만큼만.

"됐지?"

재현이 지나가며 어깨가 살짝 스쳤다. 은호는 미동도 없었다. 재현은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 은호는 이미 관심 없다는 듯 다른 데를 보고 있었다.

'……저게 지금 나를 무시한 건가.'

재현은 이상하게 뒷목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매점으로 향했다.

—

두 번째 시도 — 무리를 동원해 압박

방과 후, 재현의 라인에 있는 애 하나가 은호를 붙잡고 이것저것 캐물었다. "너 어디서 전학 왔냐", "저번 학교에서는 뭐 했냐" 같은, 겉으론 심심풀이 같지만 실은 기 싸움에 가까운 질문들.

은호는 성실하게 대답하는 척하면서도, 정작 알맹이는 하나도 주지 않았다.

"그냥 좀 멀리서." "별거 안 했어." "음, 딱히."

물어보는 쪽이 오히려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재현은 복도 끝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을 뻔했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애써 지웠다.

'저게 왜 웃겨.'

—

세 번째 시도 — 직접 부딪히기

재현은 결국 직접 나섰다. 야자 시작 전, 텅 빈 복도에서 은호를 불러 세웠다.

"서은호."

"어." 은호가 돌아봤다. 표정에 놀란 기색조차 없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너 뭔데 그렇게 여유 부려."

"내가 여유를 부려?" 은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너 되게 신경 쓰이나 보다."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재현은 팔짱을 끼며 목소리를 낮췄다.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룰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려는 거야."

"룰, 룰." 은호가 웃음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거 진짜 있긴 해? 아니면 네가 그냥 만든 거야?"

재현은 순간 대답할 말을 잃었다. 그 질문이 이상하게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 언젠가 누군가 똑같은 톤으로 물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기시감.

'……또 이거네.'

며칠 새 두 번째였다. 재현은 그 감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됐어." 재현이 짧게 말을 끊고 돌아섰다. "네 맘대로 해."

"어, 그럴게." 은호의 목소리가 뒤에서 가볍게 따라붙었다.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네."

재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귀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고, 속으로는 이상하게 오기가 치밀었다.

'포기 아니야.'

그 말을 삼키며, 재현은 그날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체 왜 저 녀석 하나한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있는 건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

야자가 끝난 밤, 재현은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아 가방을 챙기다가 창밖을 봤다. 운동장 저편, 은호가 이어폰을 낀 채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이 느긋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딱 그 나이대 애 같지 않은 걸음.

재현은 오래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쟤는 뭐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을까.'

그 질문의 답을, 재현은 아직 한참 뒤에나 알게 될 터였다. — *(다음 화 예고: 은호의 무의식적인 다정함이 처음으로 재현 눈에 걸린다)*

02화 끝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