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회 안에서 서리안의 존재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수장이 노예 하나를 곁에 두고 아낀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그 시선들은 결코 곱지 않았다. 특히 하천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해온 부관, 목인(木仁)의 눈빛은 노골적이었다.
"수장님."
그날, 목인은 하천의 집무실에 들어서며 낮게 말을 꺼냈다.
"저잣거리에 소문이 돕니다. 서가의 핏줄에게 홀리셨다고."
하천은 서찰을 넘기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흑룡회를 세우신 이유를 잊으신 겁니까. 서가의 이름 앞에서, 수장님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시면—"
"흔들린 적 없다."
하천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끊어냈다.
"그는 물건이다. 물건을 곁에 두는 것에, 이유를 대야 하나."
목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러나 방을 나서는 그의 얼굴엔 여전히 의심이 짙게 남아 있었다. — 그날 밤, 서리안은 우연히 그 대화를 문밖에서 들었다. 발이 멈춘 채로, 그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물건이다.*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서리안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감정은 분노가 아니었다. 씁쓸함,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스며나오는 다른 무언가였다.
방으로 돌아가려던 그의 앞에, 하천이 서 있었다.
"들었나."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예."
"그래서?"
하천의 눈빛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마치 당연한 걸 확인하듯.
서리안은 그를 마주 보았다. 예전이라면 반박했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박할 힘도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그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하천의 손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거짓말이 서투르군."
낮은 목소리와 함께, 하천은 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익숙한 자세였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달랐다. 손길에 담긴 힘이 평소보다 거칠었다.
"내가 물건이라 부르는 게 거슬리나."
"...상관없소."
"거짓말."
하천이 그의 턱을 잡아 올렸다.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상관없다면, 그런 얼굴을 할 리 없지."
서리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물어보지."
하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조심스러운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물건이 아니라면, 넌 나에게 뭐가 되고 싶은 건가."
그 물음에 서리안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답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모르겠소."
정직한 대답이었다. 하천은 그 대답에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거칠게 밀어붙이는 대신 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만히 맞댔다.
"나도 모른다."
낮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다만, 네가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참을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말은 소유욕이라 하기엔 너무 인간적이었고, 애정이라 하기엔 여전히 날이 서 있었다. 서리안은 그 애매한 감정의 틈에서, 자신 역시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서로의 숨소리만 확인하며 서 있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 위에서. — 그러나 저택 바깥, 목인은 어둠 속에서 낯선 자와 마주 앉아 있었다.
"수장님이 저러시면 곤란합니다."
목인이 낮게 말했다.
"방법을 찾아야겠소."
맞은편의 그림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소매 아래, 낯익은 문양이 새겨진 서찰 한 조각이 살짝 드러났다가, 이내 감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