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이 도착한 지 열흘 뒤, 왕실 마법사단 소속의 조사관이 저택에 당도했다. 나이 지긋한 남자로, 이름은 하벨이라 했다. 그는 격식을 갖췄지만, 그 안에 담긴 시선은 날카롭고 사무적이었다.
"레이번 남작가에 인사드립니다. 왕실 마법사단 소속, 하벨입니다."
남작은 애써 태연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지만, 저택 전체에는 이미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둘째 따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벨의 말에, 남작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문제라도."
"왕실에 접수된 첩보를 확인하러 왔을 뿐입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곧 끝날 일입니다."
그 말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저택 전체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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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령은 별채에서 하벨과 마주 앉았다. 백결이 그녀의 곁을 지켰다. 하벨은 그런 백결을 힐끔 바라보다가, 별다른 제지 없이 조사를 시작했다.
"손을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채령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하벨은 그녀의 손끝을 유심히 살피며, 품에서 작은 수정구를 꺼내 그 위에 가져다 댔다. 수정구가 옅게 진동하더니, 이내 은은한 빛을 냈다.
"...흠."
하벨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채령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정구가 반응했다는 건, 확실히 힘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하벨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반응은 흔치 않은 종류입니다."
백결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위험한 힘이라는 뜻입니까?"
"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왕도의 기록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는 뜻이지요."
채령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백결이 조용히 그 손을 감쌌다. 그 작은 온기가, 그녀의 떨림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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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벨은 며칠간 저택에 머물며 조사를 이어갔다. 채령의 힘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험했고, 그때마다 채령은 자신도 몰랐던 힘의 조각들을 하나씩 확인하게 되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힘, 위협을 감지하면 반사적으로 발현되는 방어의 빛.
"이건... 옛 문헌에 나오는 '수호자의 힘'과 흡사합니다."
하벨이 조사 기록을 정리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수호자의 힘이요?"
백결이 물었다.
"아주 오래전, 대륙이 혼란에 빠졌을 때 나타났다는 존재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할수록 힘이 커진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그 기록은 전설에 가까워, 실존 여부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하벨의 시선이 채령을 향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아가씨는 위험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히려요?"
"누군가에게는, 매우 탐나는 존재겠지요."
그 말에 백결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채령 쪽으로 반 발짝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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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던 날 밤, 하벨은 최종 판단을 위해 채령의 힘을 한 번 더 시험하기로 했다. 저택 뒤뜰에 마련된 조사용 결계 안에서, 그는 옅은 위협의 마법을 채령에게 흘려보냈다. 그녀의 반응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순간, 채령의 손끝에서 빛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이번엔 이전과는 다른 결이었다. 위협을 감지한 방어의 빛이 아니라, 무언가를 감싸 안으려는 듯한 부드러운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은, 정확히 백결이 서 있는 방향으로 옅게 번져나갔다.
하벨은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역시."
"역시, 라니요."
백결이 물었다.
"이 힘은, 지키고 싶은 대상이 명확할수록 강해지고 안정되는 종류인 것 같습니다."
하벨의 시선이 잠시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지금, 그 대상은 명확해 보이는군요."
채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백결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귀끝이 살짝 붉어진 것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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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하벨은 남작과 백결을 서재로 불러 최종 소견을 전했다.
"제 판단으로는, 이 아이는 왕실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향후 대륙에 도움이 될 존재일 가능성이 큽니다."
남작의 얼굴에 옅은 안도가 스쳤다.
"다만—"
하벨이 말을 이었다.
"이런 힘의 존재가 알려진 이상, 그 힘을 노리는 자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왕실에서도 계속 주시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보호 명목으로 인력을 파견할 수도 있습니다."
"...보호라 함은."
백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사님께서 계속 이곳에 머무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요."
하벨의 시선이 의미심장하게 백결을 향했다. 백결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8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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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에서는 조사관이 떠난 뒤, 백결과 채령의 관계가 저택 전체에 공공연히 드러나기 시작하며, 유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