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유설의 일상은 겉으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침이면 여전히 정원을 거닐었고, 낮에는 자수를 놓거나 시녀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녀의 서랍 깊숙한 곳에는, 이제 낯선 손거울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 며칠은 거울을 꺼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채령과 백결이 정원에서 짧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날 저녁, 그녀는 결국 서랍을 열었다.
거울 표면에 손끝을 대고, 낮게 그 이름을 불렀다.
"...도진."
표면이 옅게 일렁이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요."
유설은 스스로도 이 통화의 목적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답했다. 도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오늘 무슨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또 봤어요,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거."
"그러셨군요."
도진의 목소리에는 위로도, 부추김도 아닌, 그저 담담한 공감만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공감이야말로, 유설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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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저택에서 작은 다과회가 열렸다. 인근 마을의 유지 부인들을 초대한 자리로, 유설이 안주인 대행으로 자리를 주관했다. 채령 역시 예의상 자리에 참석해야 했지만, 늘 그렇듯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다과회가 무르익을 무렵, 처음 이 저택을 방문한 듯한 부인 하나가 무심코 물었다.
"그런데... 둘째 아가씨 어머님은 어느 가문 분이셨나요? 첫째 아가씨 어머님은 왕도의 백작가 분이시라 들었는데."
순간 자리에 옅은 정적이 흘렀다. 다른 부인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에 서로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채령이 무어라 답하기 전, 유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건 제가 답해드릴게요. 얘 어머니는... 예전에 저희 저택에서 일하던 하녀분이셨어요."
그 말 자체는 사실이었다. 유설은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을 꺼내는 타이밍과, 그 말을 뱉을 때의 옅은 미소는, 분명 채령을 향한 것이었다.
부인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수군거림이 일었다. 채령은 고개를 숙인 채 찻잔만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애써 억눌렀다.
다과회가 끝난 뒤, 채령은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설과 마주쳤다.
"...아까 그건, 굳이 하실 필요 없는 얘기였어요."
채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망보다는, 그저 서운함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유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니?"
그 말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채령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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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유설은 다시 거울을 꺼내 들었다.
"...오늘, 좀 심했나 봐요."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다과회에서... 동생 얘기를 좀 했어요. 근데 그러고 나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찜찜한 것 같기도 하고."
도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당연한 감정입니다. 오랫동안 눌러온 마음을 조금 꺼냈을 뿐인데, 익숙지 않아 그런 것뿐입니다."
"...그런 걸까요."
"아가씨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당연히 아가씨의 것이어야 할 것들을 지키려 했을 뿐이지요."
그 말은 유설의 마음속 죄책감을 정확히 어루만졌다. 그녀는 그 말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안도감이 어딘가 위태롭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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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채령은 그날 밤 하린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유설 언니가 일부러 그런 걸까?"
"당연히 그런 거죠! 아가씨가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해요?"
하린이 분개하며 말했다. 채령은 씁쓸하게 웃었다.
"...괜찮아. 어차피 사실이니까."
"사실이어도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채령은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손끝에 남은 열기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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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백결은 태오와 함께 저택 근처 마을을 순찰하던 중이었다. 최근 들어 마을 어귀에서 가축이 원인 모를 상처를 입은 채 발견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이거, 짐승 짓이 아닌 것 같은데요."
태오가 상처 자국을 살피며 말했다. 상처의 형태가 짐승의 이빨이나 발톱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법으로 인한 상처야."
백결이 낮게 답했다. 그는 이 저택에 처음 파견될 때 받았던 보고서를 다시 떠올렸다. 정체불명의 짐승 출몰. 어쩌면 그것이, 짐승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백결 님, 설마 흑마법사 얘기하시는 겁니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어. 다만..."
백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저택 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채령이 머무는 별채 쪽으로.
"...조금 더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
4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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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에서는 백결의 의심이 서서히 확신으로 바뀌는 한편, 채령과 백결의 거리가 뜻밖의 사건을 계기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