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나는 소설 속 악녀로 빙의했다

01화 · 전체 16화

조금만 다르게 살았으면

글 · 힐링아무

밤이 깊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손 안의 핸드폰 화면만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이 따끔거리고 시야가 흐려졌는데도, 이상하게 손가락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소설 속 악녀로 빙의했다 1화 장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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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또 다음 화. 그리고 또, 다음.

소설 제목은 《황금가지》중국풍 고전 로맨스. 전장을 누빈 섭정왕 소율한과, 그의 오랜 연인 정여주의 사랑 이야기. 댓글창은 늘 시끄러웠다.

“이 커플 미쳤다.” “여주 너무 예쁘다.” “섭정왕 진짜 남자다.”

나는 소설 속 악녀로 빙의했다 1화 장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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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나도 인정했다. 두 사람은, 잘 어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시선이 다른 한 사람에게 걸렸다. 연서하. 소율한의 정실부인.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완벽하게 미움받는 악녀. 정여주를 모함하고, 괴롭히고, 결국은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 섭정왕의 칼에 죽는 여자.

독자들은 그 장면에서 환호했다. “속 시원하다.” “드디어 죽었다.” 나는 그 댓글들을 한참이나 내려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에 붙잡혀 있었다.

…이 사람.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

나는 소설 속 악녀로 빙의했다 1화 장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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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일찍 죽었고, 아버지는 첩을 더 사랑했다. 연서하는 버려지듯 시골로 보내졌다. 그 어린 나이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불려왔다. 섭정왕가로. 무섭기로 유명한 남자에게 시집가야 할 사람이 울고불고 버티자, 그 자리를 대신 채우듯 끌려온 혼인. 그게 시작이었다.

왕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름만 정실. 자리는 비어 있었고, 마음은 처음부터 다른 여자에게 가 있었다. 연서하는 그 안에서도 혼자였다. 끝까지. 그러다 소진서 세자를 만났다.

처음으로 — 자기 편인 척해준 사람. 처음으로 — 손을 내밀어준 사람. 그래서 믿었다. 그래서 기대었다.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리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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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직전. 살려달라고 말했다. 소진서는 외면했고, 소율한은 망설임 없이 칼을 들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한참이나 멈춰 있었다. 숨이 막힌 것처럼.

이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편이 한 명도 없었구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어두운 천장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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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다르게 살았으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눈이 감겼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천장이 달라져 있었다.

01화 끝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